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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르 시청 광장 총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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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 == 사건 이후 각 시 경찰에 특수기동대가 창설되었다. 벨포르 시경찰청 특수기동단(SRT)을 비롯해 1975년까지 주요 도시 8곳에 전담 부대가 편성되었고, 중화기 보유와 전술 훈련이 제도화되었다. 현장 지휘의 일원화 절차도 마련되었다. 복수의 경찰기관이 동일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 최초 신고를 접수한 기관이 지휘를 맡되 일정 규모를 넘으면 국무부 기동경찰국으로 이관하도록 하는 규정이 1975년 시행되었다. 다만 이 규정은 경찰기관 사이에만 적용되어 부처별 파편화 자체는 그대로 남았다. 부상자 후송 체계와 현장 응급 처치 절차도 개편되었다. 이 사건에서 부상자 다수가 교전 지역 안에 고립되어 후송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방패 강경파는 이 사건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바르도의 사망으로 지부 간 연락과 자금 배분을 조정하는 인물이 사라졌고, 검거된 21명을 통해 다른 지역의 조직 정보도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이후 강경파의 활동은 산발적 보복에 그쳤으며 1976년 지부 조직이 소멸했다. '''도심 총격전'''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된 것도 이 사건부터다. 그 이전까지 총격전은 범죄 검거 과정의 국지적 충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 사건 이후 훈련받은 무장 집단이 시가지에서 공권력과 장시간 교전하는 형태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이 형태는 [[검은 10년]]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났으며, 1989년 [[루이나 헌정 위기|헌정 위기]]에서 극우 무장세력이 의사당을 공격한 사건도 같은 계보에서 이해된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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